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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ilbag] 2003년 7월 28일
| 2003·07·28 15:55 | HIT : 6,970 | VOTE : 872
[Q] 마크 프라이어는 올시즌, 첫 풀타임 시즌을 성공적으로 꾸려 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걱정되는 점은 이제 빅리그에서 첫 풀타임 시즌을 맞는 투수임에도 경기당 투구수가 상당히 많다는 것입니다. 더스티 베이커 감독은 선발 투수들을 혹사 시키기로도 유명하다고 하는데, 프라이어의 올시즌 투구수와 베이커의 투구수 관리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사실 베이커 감독은 SF 자이언츠 감독 시절, 선발 투수들의 혹사로 문제가 된 적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늘 불펜을 혹사 시킨다는 평가를 들었었죠. 하지만 올해는 분명히 그 반대입니다. 케리 우드와 프라이어의 투구수에 걱정을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이러한 현상은 올시즌 초반 컵스 불펜의 부상과 불안감이 노출되면서 더욱 심화되었다고 보여집니다. 그러나 분명히 프라이어의 경우는 투구수 관리를 해주어야 합니다. 거물급 신인이지만 아직 많은 이닝을 소화한 경험이 부족한 투수이기 때문이죠. 만약 프라이어 같은 투수가 과거 우드와 같이 부상이 심화되어 수술 등으로 이어진다면 베이커 감독이 쌓아올린 명성이 한번에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프라이어의 올시즌 경기당 평균 투구수는 111.3개입니다. 일반적으로 메이저리그에서 에이스급 투수도 평균이 110개를 넘어가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우드의 경우는 한층 더 심해서 112.9개에 달하고 있죠. 많은 이닝을 소화하기로 유명한 리반 에르난데스가 경기당 107.5개, 로저 클레멘스는 105.0개, 배리 지토는 107.4개 입니다. 언뜻 보면 큰 차이가 아닐 수 있지만 시즌으로 따진다면 평균 3개 차이면 1경기를 더 던진다는 결론입니다. 물론 프라이어나 우드 모두 이닝당 투구수가 많은 투수들로 일정 이닝을 소화해야 하는 선발 투수로의 문제점도 분명히 있다는 점은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 감독으로 갈등이 생기는 부분인데, 그래도 이 두 선수의 상황을 감안한다면 어느 정도 보호가 필요할 것은 분명한 사실이죠.

[Q] 메이저리그의 탑 클래스 선수들은 각자 나름대로의 훈련 방식으로 엄청난 노력을 했을텐데요.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훈련 방식에 관한 일화 중 유명한 몇 가지 정도만 소개해주셨으면 합니다.

[A] 여러분의 애증의 주인공 박찬호 선수는 과거 술자리에서 푸쉬업을 한 일화가 있습니다. 미국 진출 후에도 운동 시간이 되면 정확히 헬스 클럽을 향했다고 하는군요. 배리 본즈는 3명의 개인 트레이너와 별도의 영양사를 고용해서 자신에게 맞는 특별한 훈련과 음식을 거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에드가 마르티네스는 피칭 머신에 테니스 공을 넣고, 시속 240 km/h 로 쏜 다음 번트를 대거나 공에 쓴 숫자를 맞추는 연습을 합니다. 로저 클레멘스의 하드 트레이닝도 전설적인데, 그 중의 하나가 마치 과거 소림사 승려들이 사용했던 큰 바구니에 모래를 가득 넣고, 그 안에 양팔을 넣어 돌리는 운동입니다. 토드 헬튼은 정신적인 면을 상당히 강조하는 스타일이라 감독, 코치와의 대화 또는 명상 등으로 평정심을 찾는다고 하는군요.

[Q] 지난 시즌 월드시리즈 챔피언, 애너하임 에인절스의 빌 스톤맨 단장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우선 선수 시절, 스톤맨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네요. 몬트리올의 에이스로 활약했었던 스톤맨은 두 차례나 노히트 경기를 달성했던 투수 출신입니다. 이후 에인절스로 트레이드 되었는데, 30살이 되던 해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어깨에 이상이 생겼고, 시즌 첫 경기에서 어깨 부상을 당해 결국 생각보다 빠른 나이에 선수 생활을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강속구와 커브가 주무기였던 스톤맨의 선수 생명은 그렇게 끝이 났죠. 이후 스톤맨은 신탁회사의 직원으로 새 인생을 시작하고, 9년 동안 이 일을 하게 됩니다. 여기서의 경험은 훗날 단장으로서의 재정 관리에 도움이 된 것으로 평가를 받죠. 그후 1983년 몬트리올 프론트 오피스로 제 2의 야구인생을 시작한 그는 능력을 인정받아 87년 마침내 몬트리올의 단장에 오르게 됩니다.

실질적으로 단장으로 능력을 보인 것보다 14년간 부사장으로 재직하던 그는 1999년 구단주가 바뀔 때 마침 애너하임의 단장 인터뷰 요청을 받았고, 2000년 시즌부터 본격적으로 단장으로서의 능력을 발휘하게 되었죠. 지난 시즌 애너하임의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그의 단장 능력이 일약 빛을 발하게 되었는데, 솔직히 아직은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 마이크 소시아 감독을 끌어들인 능력과 코칭 스태프를 조직하는데, 감독에게 준 신뢰 그리고 참을성 등은 좋은 단장으로서의 자질을 일단 보였다고 생각되는군요.

Answered by 송재우
  [Mailbag] 2003년 8월 25일 03·08·25 7496
  [Mailbag] 2003년 7월 23일 03·07·23 50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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