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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엇갈린 운명의 두 천재들 Part 1
| 2003·01·07 01:35 | HIT : 8,921 | VOTE : 900
필자에게 유독 기억나는 장면이 있었다. 그것을 확실히 알기 위해 필자는 미숙한 인터넷 검색 실력을 동원해야 했고, 이러한 수고를 거친 끝에 그 날이 정확히 1996년 5월 14일이었다는 것을 찾아냈다. 이날 우연히 TV 를 보던 필자는 이 장면에서 아주 특별한 기분을 느꼈기 때문에 거의 6년이 지난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다. 우리는 천재란 99 % 의 노력과 1 % 의 재능으로 만들어진다는, 어찌보면 진부하기까지 한 표현을 자주 쓴다.

본인도 이 표현에 전적으로 동감하지만 실상 우리가 천재라고 표현하는 사람들은 각고의 노력에 의해 특별한 재능을 만든 사람들을 가리킬 때도 있지만 때로는 남들보다 우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고, 또 비록 짧은 시간동안 이나마 그 재능을 펼쳐보였던 사람을 진정한 천재로 기억하기도 한다. 그래서 필자는 다음의 두 선수들을 천재라 부르는데 아무런 이견이 없다는 전제 하에 두 선수의 상반된 운명에 대해 이야기 할 생각이다.

로켓맨의 등장

통산 300승과 4000탈삼진을 눈앞에 둔 대투수, 20승 이상의 승수를 6번이나 기록했고, 지금도 여전히 20승을 기록할 수 있는 투수… 이러한 투수의 명예의 전당 입성을 누가 반대할 것인가? 전대미문의 사이영상 6회 수상자인, 바로 로켓이라고 불리우는 로저 클레멘스… 1980년대에 데뷔해 세기가 바뀐 지금까지 리그 최고 투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클레멘스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현역 최고의 투수일 뿐 아니라 역사를 통틀어 봤을 때도 그를 능가하는 투수가 그리 많지 않은 대선수이다.

데뷔한지 5년도 채 안돼 언터처블이라 불리며 그가 동경했던 전설적인 강속구 투수, 놀란 라이언의 강력한 라이벌이 되었던 클레멘스… 워낙 유명한 선수다보니 그의 성적이나 경력에 대해 이야기 한다는 것은 자칫 쓸데없는 일이 되어 버릴 수 있으므로 여기선 단지 그에 대한 필자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몇가지 적어보겠다. 3개의 팀에서 모두 사이영상을 거머쥔 진기한 기록을 가지고 있는 클레멘스. 그가 보스턴을 떠날 때 사람들은 그의 시대는 갔다고 수근거렸으나 보란듯이 토론토 블루제이스에서 2년 연속 사이영상을 차지했고, 2001년 시즌 역시 뉴욕 양키스 소속으로 또 다시 20승을 거두며 사이영상을 수상하는 등 끝을 짐작할 수 없게 만드는 그의 힘은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까지도 존경하게 만든다.

클레멘스가 마흔이 다된 나이에도 여전히 최고의 투수로 군림할 수 있는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 일단 그가 장수할 수 있는 파워 피처의 전형이라는 점, 따라서 큰 부상을 당하지 않았다는 것과 위력적인 구질과 함께 뛰어난 제구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 등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필자는 로켓의 장점으로 누구보다도 강한 그의 투쟁심과 자긍심을 꼽고 싶다. 모두가 알다시피 클레멘스는 서브웨이 시리즈라고 불렸던 2000년 월드시리즈에서 마이크 피아자와의 배트 투척 사건으로 인한 신경전으로 화제의 중심에 올랐던 적이 있다. 사건을 거슬러 올라가면 피아자를 기절시켰던 빈볼시비 사건이 등장하는데, 이를 두고 상대전적에서 자신에게 유난히 강한 피아자에게 본때를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빈볼을 던졌다는 말들이 많았다.

본인은 극구 부인을 했으나 (당연한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어느 바보가 일부러 머리를 맞추었다고 그러겠는가?) 필자의 개인적 견해로는 클레멘스의 그간의 전력으로 비추어 볼 때 어느 정도 고의성이 있는 위협구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진실이야 어찌되었던 클레멘스는 좋게 말하면 몸쪽 승부를 잘하는 투수로, 나쁘게 말하면 위협구를 잘 던지는 투수로 악명이 높다. 심지어 60 Minutes 라는 미국의 시사 프로그램은 클레멘스의 이러한 점을 다루기도 했을 정도이다. 당연히 클레멘스는 고의성을 부인했고, 조 토리 감독과 데릭 지터를 위시한 팀 동료들은 클레멘스를 두둔하고 나섰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필자가 느낀 점은 역시 클레멘스는 대선수라는 점이었다. 여러모로 끈질기게 추궁하는 진행자의 질문에 당당하게 대답하는 그의 신념이 깃든 모습에서 이러한 투쟁심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필자는 옳고 그름을 떠나서 최고 투수가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면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본인에 대한 자신감 없이 어찌 다른 사람들을 제압할 수 있을까? 이러한 점에서 박찬호에게는 항상 아쉬움을 느낀다. 클레멘스는 또한 자기 자신에 대한 대단한 자긍심과 함께 두둑한 배짱 또한 대단한 선수이다. 그가 1986년, 사이영상과 리그 MVP 를 동시에 석권했을 때 행크 애런이 투수가 MVP 를 수상한 점에 대해 비판을 하자 클레멘스는 이 전설적인 대선수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나는 그가 아직도 현역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랬다면 나는 아마도 내가 얼마나 뛰어난 선수인가를 그에게 보여주기 위해 그의 머리를 깨서 열었을지도 모른다" 이 얼마나 똥배짱인가?

양키스로 트레이드 된 후 양키 스타디움의 베이브 루스 동상을 어루만지는, 조금은 특이한 의식을 행하며 월드시리즈 마운드에 선 클레멘스는 1999년과 2000년, 2년 연속으로 그토록 소망하던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끼게 된다. 그리고 양키스 유니폼을 입고,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겠다는 발언으로 양키스 선수로서 최고의 위치에 올랐다. 아울러 그는 통산 300승을 채운 후 최고의 명문팀인 양키스에서 명예롭게 유니폼을 벗을 것이다. 그와 비교되는 다른 또 한명의 천재와는 다르게…

불운했던 또 한명의 천재

1996년 5월 14일. 9회초 상대팀의 마지막 타자가 아웃이 되자 그라운드와 덕아웃에 있던 모든 양키스 선수들은 마운드로 달려가 그날의 영웅을 축하해 주었다. 양키 스타디움의 모든 관중들 또한 다시 돌아온 불운한 천재에게 열띤 환호와 기립 박수를 보내주었다. 이날은 그해 아메리칸리그에서 유일하게 노히트 게임이 작성된 날이었고, 그 주인공은 바로 'Doctor K' 로 과거 뉴욕 메츠의 젊은 에이스였던 드와이트 구든이었다. 필자는 앞에서 이야기했던 천재라는 말의 의미를 생각해볼 때 구든이야말로 진정한 천재였다고 생각한다.

비록 그의 전성기 모습은 몇몇 편집된 화면으로만 볼 수 있었지만 메츠란 팀의 존재를 바로 구든의 이름을 통해서 알게 되었고, 그가 어떻게 생겼는지 어떠한 공을 던지는지 볼 수 없었음에도 신문을 통해 간간히 전해오는 그의 활약은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필자의 뇌리에 왠지 모르게 뚜렷히 각인되었다. 구든… AL 에서 로켓이 등장했던 1984년에 그는 19살의 어린 나이로 ML 에 데뷔했다. 당시 메츠의 감독이었던 데이비 존슨은 그를 빨리 빅리그 마운드에 올리고 싶어했으나 춥고 바람이 많이 부는 리글리 필드에서 데뷔전을 치렀다가 부상을 당한, 전 메츠의 유망주 팀 리어리의 전례를 고려하여 그의 등판일정을 조정할 정도로 그는 주위의 기대를 한몸에 받던 탑 유망주였다.

그의 등장은 그야말로 센세이셔널했다. 데뷔 첫 시즌부터 루키 탈삼진 신기록을 갈아치우는 등 탈삼진은 그의 상징과도 같아졌고, 사람들은 그를 Doctor K 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또한 그가 등판해서 삼진을 잡을 때 마다 셰이 스타디움의 벽엔 K 라는 글자가 하나둘씩 걸리기 시작했다. 이해에 그는 자신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하며 19살이라는 나이에 최연소 올스타가 된다. 아울러 그는 다음 시즌, 불과 20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최고의 자리에 오른다. 20살의 어린 나이에 24승과 방어율 1.53 이라는 성적을 올리며 투수 부문 트리플 크라운과 더불어 사이영상을 차지한 것이다. 앞으로 현대 야구의 시스템상 이렇게 어린 나이에 구든의 1985년 시즌 같이 역사적인 성적을 올리는 경우는 불가능할 것으로 본다. 바야흐로 아메리칸리그는 로저 클레멘스, 내셔널리그는 드와이트 구든의 시대가 접어든 것이었다.

그는 불같이 떠오르는 패스트볼과 폭포수같은 커브로 내셔널리그 타자들을 압도했다. 다음 시즌인 1986년에는 비록 포스트시즌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하는 부진을 보이지만 월드시리즈 우승이라는 감격을 맞이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여기까지였다. 너무 일찍 정상에 섰기 때문일까? 비록 이후에도 20승에 가까운 성적을 올리긴 했지만 그것은 사람들이 기대하던 구든의 모습이 아니었다. 계속된 약물과 과다한 알콜복용 그리고 이어지는 부상에 그는 더 이상 Doctor K 의 모습을 되찾을 수 없었다. 그는 천재가 아닌 평범한 선수가 되가고 있던 것이다. (이 대목에서 필자의 뇌리를 스쳐간 선수는 다름 아닌 대럴 스트로베리이다. 구든과 함께 메츠를 이끌었던 그도 자신의 재능을 모두 보여주지 못하고, 굴곡이 많은 선수생활로 모든 메츠팬들을 아쉽게 했다. 스트로베리에 대해선 [下] 편에서 다시 다루겠다)

계속되는 그의 방황은 그 자신 뿐만이 아니라 실로 모든 야구팬들에게도 분명 커다란 손실이었다. 팬들은 리그 최고의 투수를 잃은 것이다. 약물 재활센터를 들락거리던 그의 모습은 메츠 구단 뿐만 아니라 모든 팬들이 원하던 모습이 아니었다. 그는 당시 통산 300승 뿐 아니라 400승을 거둘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투수로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리그의 징계에 따라 1년 반 정도 공백을 가진 그가 다시 부활한 것은 1996년이다. 조지 스타인브레너는 그에게 기회를 주었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그는 비록 예전의 압도적인 모습은 아니었지만 5월 14일, 당대 최고의 타자인 켄 그리피 주니어와 에이로드, 에드가 마르티네스, 제이 뷰너 등이 버틴 막강 타선의 시애틀 매리너스를 맞아 생애 최초의 노히트 게임을 달성한다.

이 모습을 CNN 스포츠 뉴스 하이라이트로 본 필자는 환호하는 그의 모습에서 기쁨과 함께 왠지 모를 씁쓸함을 느꼈다. 구든과 메츠의 팬이었던 필자에게 그가 메츠 시절에도 이루지 못한 노히트 게임을 다른 팀도 아닌 같은 뉴욕의 양키스에서 이루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린 탓일까? 특히 꺼져가는 구든의 마지막 불꽃이 타오르는 듯한 느낌마저 들어 더욱 그러했다. 구든은 제대로 된 시즌을 보낸 적이 몇번 안된다. 그는 선수말년에 많은 팀을 전전하다 끝내 200승에 6승이 모자란 통산 194승의 성적을 남긴 채 쓸쓸히 유니폼을 벗게 되었다. 결국 그는 자신의 능력을 모두 펼쳐보지도 못하고 은퇴했던 것이다.

Written by Deadmarsh
* 이 글은 2002년 1월경에 작성된 글입니다
  [Column] 엇갈린 운명의 두 천재들 Part 2 03·01·07 7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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