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 Community

엠엘비보드

자유게시판

맥스블로그

과거게시물

유저게시물

피겨게시물

테니스섹션

엠엘비닷컴

마이너닷컴

스코어보드

연봉페이지

레퍼런스닷컴

팬그래프닷컴

로토월드닷컴

판타지베이스볼


TOTAL ARTICLE : 136, TOTAL PAGE : 1 / 5
[Hall Of Fame] 요기 베라 Part 1
| 2003·01·07 01:35 | HIT : 6,440 | VOTE : 602
포지션 / 투타 : 포수 / 우투좌타
생년월일 : 1925년 5월 12일
현역기간 : 1946 - 1965년
명예의 전당 헌액년도 : 1972년
득표율 : 85.61 % (396표 중 339표 획득)


열 손가락에 챔피언 반지를 낀 사나이

여러분은 지난 1999년 7월 18일, 뉴욕 양키스의 데이빗 콘이 퍼펙트 게임(vs 몬트리올 엑스포스)을 달성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경기에서 시구를 했던 노인과 포수 자리에서 그 공을 받았던 또 1명의 노인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1956년 10월 8일, 같은 장소에서 벌어진 월드시리즈 5차전(vs 브루클린 다저스)에서 양키스가 퍼펙트 게임을 기록했을 당시의 배터리였던 돈 라센과 요기 베라였다. 콘이 퍼펙트 게임을 기록했던 그날은 바로 1956년 당시의 포수였던 베라를 기념하기 위해 양키스가 특별히 제정한 날이었다. 그 작달막한 노인이 과연 어떠한 일을 했기에 미국 최고의 명문팀인 양키스가 그를 위한 날까지 제정했을까?

베라라는 사람을 단 한마디로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야구 역사상 가장 뛰어난 포수 중 1명이었고, 가장 뛰어난 리더였다. 또한 그는 최고의 독설가였고, 뛰어난 감독이었으며 훌륭한 자선사업가였다. 아울러 그는 위대한 엔터테이너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의 화끈하고 투지 넘치는 플레이에 열광했으며 그의 엉뚱한 행동들에 즐거워했다. 18년간 양키스에서 활약한 베라는 선수로서 무려 3번이나 아메리칸리그 MVP 를 차지했으며 통산 358홈런을 기록했다. 아울러 양키스 감독이었던 케이시 스텡겔이 "우리팀의 투수들이 훌륭한 피칭을 하는 것은 포수 자리에 베라가 있기 때문" 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뛰어난 수비력을 가지고 있는 포수이기도 했다. 또한 베라는 어느 누구보다도 많은 14번의 월드시리즈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그 중 10번의 시리즈에서 우승의 감격을 맛보았다. 역사상 베라를 제외하곤 그 어떤 선수도 열 손가락 모두에 챔피언 반지를 끼는 영광을 누리지는 못했다.

물론 그가 활동하던 시절에 양키스가 이룬 10번의 우승이 베라 혼자만의 힘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그 시기에 베라는 양키스에서 누구보다도 중요한 위치에 있었던 선수였다. 쉽게 단정지을 수는 없는 일이지만 만약 베라가 없었더라면 월드시리즈 우승을 26번이나 차지한 양키스의 역사는 많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경기장 안에서 최고의 선수였던 베라는 경기장 밖에서도 항상 팬들에게 친절하고 겸손한 모습으로 사랑을 받았고, 누구보다 어린이들을 사랑했으며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데 항상 앞장섰다. 베라는 미국의 스포츠 역사상 사람들로부터 가장 사랑 받는 운동선수 중 1명이었다.

브랜치 리키의 최대의 실수

로렌스 피터 베라는 1925년 5월 12일, 미주리주의 세인트루이스에서 이탈리아계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1932년에 그의 가족은 세인트루이스의 유명한 이탈리아인 거주지인 '이탈리안 힐' 로 이주했는데, 거기서 어린 베라는 웨이드 문법학교에 들어가 글을 배웠다. '요기' 라는 유명한 별명은 이때 지어진 것인데, 그의 친구였던 잭 매귀어라는 소년이 인도영화를 보고 난 후 베라의 행동이 영화에 등장하는 요가수행자와 비슷하다고 그를 요기라고 부르기 시작한데서 유래되었다. 어린 시절 그가 자랐던 세인트루이스에 연고지를 둔 카디널스는 당시 내셔널리그의 최강팀이었다. 당연히 어린 베라는 야구에 빠져들 수 밖에 없었고, 친구인 조 가라지올라 등과 함께 카디널스의 유니폼을 입는 꿈을 키워갔다. 베라가 14살이 되었을 때 그는 가정형편 때문에 도저히 학교를 계속 다닐 수 없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그는 돈을 벌기 위해 석탄 광산, 청량음료 회사, 구두공장 등에서 일했다. 그러나 그러한 어려운 형편에서도 카디널스 유니폼을 입고 싶다는 꿈은 잃어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1942년, 17살이 된 베라에게 마침내 기회가 왔다. 그는 친구인 가라지올라와 함께 카디널스의 트라이 아웃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카디널스는 베라의 실력을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 당시 카디널스의 구단주였던 브랜치 리키는 가라지올라에게 500달러의 봉급을 제시한 반면 베라에게는 250달러 밖에 제시하지 않았다. 자신의 실력이 친구보다 뛰어나다고 자신하고 있었던 베라에게 이것은 치욕스러운 일이었다. 그는 최소한 친구와 같은 금액은 받아야 겠다고 주장했고, 리키는 베라의 요구를 거부했다. 결국 베라는 카디널스와의 계약을 포기했고, 가라지올라는 어릴 적부터의 꿈이었던 카디널스 유니폼을 입을 수 있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이지만 가라지올라는 메이저리그에서 9년간 .257 의 평범한 성적만을 남겼는데, 이것은 베라가 달성한 '3번의 아메리칸리그 MVP & 10번의 월드시리즈 챔프' 에 잽도 안되는 것이었다. 리키는 역사상 가장 훌륭한 경영인 중 1명으로 평가받고 있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기까지 한 인물이다. 그는 체계적인 팜 시스템을 최초로 도입했고, 흑인인 재키 로빈슨과 계약해서 인종차별의 굴레를 벗겨낸 인물로도 유명하다. 그러한 리키가 불과 250달러 때문에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1명으로 성장할 선수를 놓치고 말았던 것이었다. 물론 당시에는 어느 누구도 베라가 위대한 선수로 성장할 줄 몰랐겠지만 이 일은 훗날 리키가 저지른 최대의 실수로 평가받는다.

양키스의 영광 (1)

1년 뒤 베라는 500달러의 금액에 양키스와 계약했다. 그가 양키스 유니폼을 입은 것은 순전히 친구보다 적은 돈을 받을 수 없다는 그의 자존심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군입대를 앞두고 있는 이 작달막한 포수를 주목하고 있지 않았다. 그의 키는 5피트 8인치(약 173 cm)에 불과했는데, 많은 사람들은 베라가 결코 포수로서 적합한 체격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1943년, 베라는 마이너리그 팀인 노포크 베어스에서 시즌을 시작했다. 그리고 1944년, 그는 해군에 징집되어 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는데, 그 유명한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그는 로켓 발사병으로 작전에 참여하고 있었다. 1945년, 몇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며 전쟁에서 돌아온 베라는 다시 노포크 팀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1946년 시즌, 베라는 주로 좌익수로 활약하면서 .314 의 타율과 15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가능성을 보이기 시작했다. 시즌이 끝날 즈음 양키스는 은퇴를 앞둔 노장 포수 빌 딕키의 뒤를 이을 포수로 베라를 점찍었고, 그를 뉴욕으로 불러 올렸다.

1947년 시즌, 양키스는 조 디마지오를 필두로 월드시리즈 타이틀을 차지했다. 이 시즌에 베라는 83경기에 출장, 타율 .280, 11홈런을 기록했다. 그러나 그의 수비는 팀을 불안하게 하는 것이었고, 때문에 그는 외야수로 24경기에 출장했다. 이와 같은 일은 1948년 시즌에도 계속되었지만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명포수 출신인 빌 딕키 코치의 지도로 그의 수비력은 일취월장하기 시작했다. 1948년, 베라는 .305 의 타율과 14홈런으로 좋은 활약을 선보였고, 생애 최초로 아메리칸리그 올스타에 선정되었다. 그리고 1949년 시즌이 되자 그는 리그 최고의 인사이드 워크와 주자견제 능력을 가진 포수로 성장해 있었다.

1949년, 베라는 3할을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20개의 홈런을 날렸고, 109게임에서 무려 60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케이시 스텡겔이 새로 감독으로 부임해 온 양키스는 이 시즌에 97승을 올렸고, 다시 한번 월드시리즈에 진출했다. 그리고 월드시리즈에서 양키스는 다저스를 4승 1패로 간단히 제압했다. 그러나 이번 시리즈에서도 베라의 활약은 거의 없었다. 그는 시리즈 동안 안타 1개와 볼넷 1개만을 얻어냈을 뿐이었다. 1950년 시즌, 베라는 .322 의 타율과 28홈런, 124타점, 116득점을 기록하며 맹활약했다. 놀라운 것은 그의 삼진 숫자였는데, 597타수 동안 불과 12번 밖에 삼진을 당하지 않았다. 1950년 시즌 아메리칸리그 MVP 는 팀 동료인 필 리주토에게 돌아갔지만 베라의 활약은 그 이상이었다. 1950년에도 양키스는 2년 연속으로 월드시리즈에 진출했는데, 상대인 필라델피아 필리스를 4연승으로 가볍게 제압했다.

Written by ungurs
  [Hall Of Fame] 요기 베라 Part 2 03·01·07 5997
  [Hall Of Fame] 치프 벤더 03·01·07 4064
Copyright 1999-2022 Zeroboard / skin by GGAM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