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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코트의 득과 실
 엘두께  | 2005·08·27 12:27 | HIT : 4,423 | VOTE : 834
윔블던이 한창일 때였죠. 비너스, 세리나 윌리암스의 아버지이자 코치이신 리처드 윌리암스가 ‘가장 유명한 테니스 대회를 매년 개최하는 영국이 테니스 강국이 아닌 이유’에 대해 한 말씀 하셔서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윌리엄스 선생님이 보고 있는 영국 테니스의 문제점은 간단합니다. 영국 사람들은 아직도 테니스를 고상한 스포츠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거죠. 영국인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테니스 이미지는 잔디 코트, 하얀 테니스복, 상류층 사교스포츠……뭐 이런 것들이라는 겁니다. 윌리엄스 코치님은 미국은 벌써 오래 전에 고상한 테니스를 버리고 지금은 거의 서민의 스포츠로 탈바꿈했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영국도 빨리 미국처럼 테니스 문화가 바뀌어야 희망이 있을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습니다.

윌리엄스 아저씨 말대로 영국인들이 베르톨루치의 영화 ‘마지막 황제’에서 푸이가 자금성을 쫒겨나기 직전 장면에서처럼 테니스 놀이를 하고 사는 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현재의 미국 테니스가 중상류 층들 끼리끼리 즐기는, 럭셔리 잔디코트를 갖춘, 매우 폐쇄적인  클럽 문화 중심으로 돌아간다면 LA의 게토에서 자란 윌리엄스 자매가 넘버 원 테니스 스타가 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겠죠.

테니스가 일부 계층에서 인기 있는 콧대 높은 스포츠에서 대중의 사랑을 받는 모던 스포츠로 ‘진화’하게 된 것은 뭣보다도 대량 생산+편리한 관리의 이점이 있는 하드코트의 등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테니스의 대중화로 인해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하드코트 개발이 이루어지게 된 건지 아니면 하드코트의 발명으로 인해 테니스 대중화의 가속도가 붙은 건지는 그야말로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의 문제겠지만, 어쨌든 하드 코트는 70년대 이후 프로 테니스가 활성화되면서 여기저기서 생기기 시작했는데 결정적으로 1978년 US Open이 플러싱으로 장소를 옮겼을 때 코트 역시 잔디/클레이에서 ‘데코터프 2’라는 콘크리트 바닥으로 바꾸면서 하드코트의 대중화가 탄력을 받게 되었죠.

70년대 말의 헐리웃 영화에 유독 테니스 치는 장면들이 많이 있는데, 예를 들면 우디 알렌의 ‘애니 홀’이라든가 ‘러브 스토리 2’ 같은, 주로 도시를 (뉴욕을^^) 배경으로 한 여피들의  연애 영화들이죠. 고층 건물 사이에 있는 별로 삐까뻔쩍 하지 않은 클럽에, 바닥은 물론 죄다 하드코트인데 그 당시 미국 중산층들한테 얼마나 테니스가 인기가 많은 스포츠였는지 짐작이 갑니다.

요새는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무시무시한 느낌을 주는 뉴욕의 슬럼가, 할렘에서도  동네 테니스장 보는 것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비너스와 세리나도 그런 데서 테니스를 배웠겠죠? 비싼 잔디 코트에서 레슨비 내며 코치 받을 걱정 없이 말이죠.

대부분의 하드코트는 클레이코트 보다 훨씬 빠르며 잔디보다는 좀 느립니다. 그러나 제작자가 어떤 재료를 어떤 비율로 섞느냐에 따라서 스피드가 빨라질 수도 느려질 수도 있습니다.
그냥 콘크리트로만 코트를 만들 수도 있고, 고무 성분이 들어갈 수도 있죠. 호주 오픈이 열리는 로드 레이버 아레나의 ‘리바운드 에이스’가 젤 유명한 고무 성분이 잔뜩 들어간 하드코트인데 고무가 섞인 하드코트는 그냥 콘크리트 바닥보다는 스피드가 좀 느립니다. 아무래도 쿠션을 주게되니까요.

하드코트의 장점은 뭘까요?
그 바닥이 있었기에 비너스와 세리나가 세계적인 선수가 될 수 있었다! 요거 말고요^^

1. 코트 바닥이 고르기 때문에 불규칙 바운스가 나오지 않습니다. 즉 하드코트의 바운스는 한결 같고 예측 가능하죠. 심지어 라인에 공이 맞았을 때도 바운스는 이상이 없을 정도로 규칙적이기 때문에 플레이 하는 입장에서는 편하죠. 클레이는 그래도 불규칙 바운스가 덜한 편인데 잔디는 정말 악명이 높죠. 잔디에서 플레이하는데 익숙하지 않은 선수들은 짜증이 날만도 합니다.

2. 클레이에서 길고 긴 랠리를 보는 게 지칠 때도 있습니다. (보는 우리도 지칠 지경인데 선수들은 어떻겠습니까!) 잔디에서는 어떤 게임은 서브 4방으로 그냥 끝날 때도 있죠. 물론 서브 게임을 그렇게 가져가시는 분이야 엄청 기분이 좋으시겠지만 당하는 분이나 그걸 구경하는 관중들은 허무하기 짝이 없을 겁니다. 반면 하드코트는 적당히 빠릅니다. 서브-앤-발리, 그라운드스트로크 위주의 게임, 둘 다 맘 놓고 할 수 있죠. 그 바닥에서 치면 라켓에 공 맞는 소리도 경쾌하고 이쁘게 들립니다. 정말이에요^^

3. 관리하기 편합니다. 어느 동네나 다 있습니다. 그래서 친근합니다. 그리고 싸고 질깁니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요….?)

그렇다면 단점은 뭘까요?

1. 콘크리트 혹은 아스팔드 바닥……보기만해도 삭막한 느낌이 듭니다. 거기서 다이빙 발리를 하는 선수도 가끔 있는데 그러구 나서 몸이 온전할 수가 없죠.

2. 조 토리 감독은 터론토, 탐파베이 같은 곳에서 게임이 있으면 지암비를 지명타자로 주로 내보냅니다. 지암비의 햄스트링이 좋지 않을 걸 고려해서 카펫 바닥에서 수비하지 않도록 배려를 하는 건데….생각해보면 좀 우습죠. 지암비가 수비를 하면 얼마나 한다고….주로 서 있는 시간이 많은 지암비도 유리그릇 다루듯 조심스럽게 하는데…. 하물며 그거 보다 더 딱딱한 바닥에서 허구헌날 뛰는 테니스 선수들은 몸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몇 년 전 조사에 의하면 선수들의 부상의 55%는 하드코트에서, 12%가 클레이에서, 8%가 잔디에서 뛰다가 생겼다고 결과가 나왔다고 하는군요. No wonder에요. (어휴, 관절, 등, 발목, 어깨가 마구 쑤시는구나…….)

3. 하드코트는 원래 미국태생이지만 이제는 가장 스탠다드한 코트가 되었죠. 요즘은 테니스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다들 하드코트에서 플레이하는 걸 ‘정상’으로 여기는 것 같아요. 그랜드 슬램 담으로 권위 있는 마스터스 시리즈만 해도 9개의 토너먼트 중에 6개가 하드코트 혹은 인조 코트에서 열릴 정도로 너무나 너무나 보편적인 코트인데요, 이렇게 몸에 좋지도 않는 바닥에서 대부분의 토너먼트가 열리는 건 정말 문제입니다.

게다가!!!
하드코트 대회는 횟수도 많지만 하필이면 가장 더울 때 주요 대회가 열립니다. 호주 오픈이 열리는 1월 말은 그동네 여름이고 그 뒤에 있는 두 개의 마스터스 토너먼트 역시 더운 남 캘리포니아와 플로리다에서 열립니다. 그리고 US Open 시리즈가 있는 7월말부터 8월 말은 같은 시기의 우리나라와 기후가 비슷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여러분 같으면 햇볕 쨍쨍한 여름의 폭염 속에서 굳이 테니스를 처야 한다면 아스팔트에서 (그것도 어떤 건 고무까지 섞인) 뛰고 싶으십니까? 아니면 클레이나 잔디에서 뛰고 싶으십니까? 어느 쪽을 고르시겠어요???

확실히 탑 클래서 선수들 중에서 부상에 시달리시는 분들이 예전에 비해 증가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이번 US Open 시리즈만 해도 여자 탑 랭커들은 거의 다 부상으로 불참을 한 지경이었으니 말이에요. 비너스, 세리나 자매 (이분들은 뭐 항상 부상중이시긴 합니다만) 중에서 세리나는 원래 발목이 안좋았는데 무릎까지 다치셨다는군요. 비너스는 언제나 그렇듯이 정체 불명의 부상 중이시고…. 샤라포바양은 어깨가, 다벤포트는 등, 또 작년 US Open 챔피언이신 쿠즈넷초바도 역시 심각한 등 부상으로 고생하고 계시답니다.

이 난국을 타개할 해결책은 의외로 아주 단순합니다.

시즌을 줄여야 합니다. 사실 ‘시즌’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하군요. 비시즌이 겨우 한달 정도이고 이 기간동안에 시범경기 하러 다니는 일부 선수들도 있으니….
어쨌든 호주오픈은 너무 일찍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건 마치 일주일 밤 새고 나서 한 5시간 자고 다시 일어나서 출근하는 기분이잖아요.
호주 오픈을 2월 말로 미뤄서 그 전에 충분히 웜업 토너먼트가 열리게 해야 합니다. 가능하면 마스터스 시리즈도 하나 넣고요.  선수들이 좀 덜 더운 날씨 속에서 몸도 제대로 풀려서 그랜드 슬램에 제 컨디션으로 플레이를 할 수 있도록 말이죠.

그리고, US Open이 끝나고 나서 뭣 때문에 시즌을 3개월 씩이나 질질 끄는지 모르겠습니다.
4개의 그랜드 슬램이 다 끝나면 긴장감이 떨어져 버립니다.
9월말에 아시아 투어를 하고 10월 초에 깔끔하게 마스터스 컵을 끝으로 마무리를 하면 좋겠습니다.

실현 가능성이요?
아주 없어 뵈진 않습니다. 선수들, 코치, 해설자들 중에서 시즌을 줄여야 한다고 목소리 높이는 사람들이 꽤 있거든요. 매리 조 페르난데스, 브래드 길버트, 패트릭 메켄로, 등등….솔직히 말해서…… 해결책이랍시고 내놓은 게 순전히 제 아이디어는 아니옵니다. 흐흐흐^^
씨엔
중학교때 스타티비를 심심할때 마다 봐서 테니스는 약간 관심있는 정도였는데 엘두께님이 테니스관련 정보를 올려주실때마다 정말 재밌게 봅니다.^^
그런데 하드코트가 잔디코트보다 느리다는건 오늘 첨 알았네여~

05·08·27 14:22

엘두께
빠른 순서대로 보면

1. 잔디 2. 실내 카펫 3. 하드코트 4. 고무섞인 하드코트 5. 클레이

그랜드 슬램은

1. 윔블던 2. US Open 3. 호주오픈 4. 롤랑가로스 (프렌치 오픈)
순서입니다.

05·08·27 15:50

make_a_drama
흐흐 요새 테니스에 부쩍 관심이 생겨 두께님 글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지금 영국에 있어서 마드리드나 파리 마스터스도 가보려고 하는 중^^

05·08·27 19:36

뿌라이아
테니스 볼때마다 두께님글 검색해서 보게되던데 ㅎㅎ

05·08·27 22:10

Josh Beckett
예... 저는 저장해두죠. 오래간만에 좋은 글 보게 됩니다. 두께님... ^^;

05·08·28 17:40

ghosts
하드코트(순수 아스팔트) 에서 테니스 치다가 십자인대 찢어진 저로서는 상당히 공감이 가는군여

05·08·30 21:58

라이언
흠..왜 잔디가 가장 빠른지 잘 모르겠음..야구는 반대인데..

05·09·04 18:51

toss
테니스 공은 고무라서 충격을 전부 흡수해서가 아닐련지요... 아니면 아무리 생각해도 -_-;;

05·09·27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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